난 그녀의 독보적인 재능과 직업정신에 압도되었다.
직관력이 뛰어나고 순간적인 감정몰입에 능했는데 그걸 지켜보는 건 일종의 특권이었다.
톱스타가 되면 거기에 안주해 제멋대로 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녀는 늘 열의를 갖고 자신을 새로운 한계로 밀어부쳤다.
전설 그 자체인 그녀를 알고 지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
폴 뉴먼
본명
엘리자베스 로즈먼드 테일러
Elizabeth Rosemond Taylor
출생
1932년 2월 27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 히스우드
보라색 눈으로 유명한 고전 할리우드 시대의 배우로, 30년 가까이[7]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 인기를 누리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다섯 번 후보로 지명되고 그 중 두 번[8] 수상했다. 골든 글로브 2회[9], BAFTA 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1회 수상자이기도 하다. AFI 선정 100년간 가장 위대한 여성 배우 7위에 뽑히기도 했다. 말년엔 자신의 명성을 발판으로 유명인들 가운데 에이즈 퇴치 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하고 주도적으로 앞서 박애주의자로 칭송 받았다. 이런 공적을 바탕으로 2002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수상받았다.
초등학생 나이에 대스타가 되어 일상이 낱낱이 언론을 타게 되면서 유년기를 상실한 뒤 어른이 되어서는 더 큰 성공을 이뤄낸, 할리우드에서 매우 흔치 않은 사례다.[10] 어려서부터 "유명세가 마치 공기와 같을" 정도로 대중에게 공개된 삶을 살았기 때문인지 동시대의 스타들과 달리 사생활을 숨기지 않았고, 이는 오늘날 스타-대중의 관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인권 운동 참여, 화려한 개인사, 그에 따른 고난 등 현 할리우드의 공식이 된 스타성의 필수 구성 요건들을 가장 앞서 제시한 인물들 중 하나로 여겨진다. <클레오파트라>로 할리우드 배우 최초 출연료 백만 달러 계약을 이뤄냈으며 이를 기념하는 공식행사까지 가졌으나 제작이 늦어져 개봉년도로는 여배우 최초의 기록이다.[11]
귀로(There's One Born Every Minute), 1942 - 글로리아 트와인 역
유니버설 픽처스와 MGM이 '신비로운 눈을 지닌 9살 여자애' 테일러의 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 접촉해왔다. 어머니가 유니버설을 택해 계약 후 찍은 첫 작품이다. 주인공의 막내딸 역할이었다. 그러나 유니버설은 곧 아이답지 않은[26] 성숙한 얼굴을 탐탁치 않게 여기게 됐고 계약을 취소했다. 이 영화 시작 부분을 보면 테일러는 전문 성악 발성으로 어른처럼 노래하는데[27] 이처럼 아이답게 노래할 줄 모르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래시 집에 오다(Lassie Come Home), 1943 - 프리실라 역
그 유명한 래시 시리즈의 탄생이었다. MGM이 영국식 억양의 조연을 필요로 하면서 오디션을 통해 3개월 임시 계약을 했다.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대중에게 각인 시킨 첫 작품이다. 결국 7년 짜리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제인 에어(Jane Eyre), 1943 - 헬렌 번스 역
20세기 폭스 제작. MGM이 테일러를 빌려줬다. 로체스터 역을 맡았던 오슨 웰스는 어린 테일러의 미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초반에 짧게 나오지만 불운을 고요하게 받아들이는 소녀를 강렬한 존재감으로 표현하며 영화 전체에 고딕 분위기를 잘 깔아주었다는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는다.
도버의 하얀 절벽(The White Cliffs of Dover), 1944 - 베치 케니 역
로디 맥다월이 아이린 던의 아들로, 테일러가 이 아들이 좋아하는 이웃 소녀로 나온다. 감독은 테일러를 눈여겨 봤다가 <녹원의 천사> 주연으로 추천했다.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 1944 - 벨벳 브라운 역
첫 주연작이다. 남장을 한 채 애마에 올라 장애물 경마에 나가는 소녀의 애기다. MGM은 수준급 승마와 영국식 억양 구사가 가능한 어린 여배우를 찾는 데 큰 난항을 겪었다. 가까스로 테일러를 구한 뒤엔 아직 체격이 작아 원작 주인공에 어울릴만큼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MGM이 몇 달 기다려주는 동안 테일러는 승마를 더 연마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MGM 간판스타 미키 루니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영화는 흥행과 비평 양면으로 성공했다. "그 세대의 또래 소녀들은 모두 녹원의 천사가 되고 싶어했다."[28] 테일러는 이때의 경험에 대해 "연기가 아니라" "동물을 사랑하는 어린아이였던" "내 실제 삶의 연장이었다"고 말했다. 테일러는 같이 연기할 말을 직접 골랐는데 MGM은 이 말을 13살 생일선물로 줬고 테일러는 이 말이 사망할 때까지[29] 길렀다. 테일러에게서 대스타의 가능성을 엿본 MGM은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용감한 래시(Courage of Lassie), 1946 - 캐서린 "캐시" 엘러노어 메릭 역
래시 시리즈 주연을 꿰찼다.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아버지와 인생을(Life with Father), 1947 - 메리 스키너 역
코미디. 윌리엄 파월과 아이린 던이 이야기의 중심인 부부로, 지미 라이든이 아들이자 테일러의 애정상대로 나온다.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네 배우의 연기가 찬사를 받았다.
신시아(Cynthia), 1947 - 신시아 비숍 역
대본에 버스터 키튼이 참여했다. 뮤지컬에 재능이 있다는 설정이다. 테일러는 학교 오디션 장면에서 곡 하나를 능숙한 성악 창법으로 완창한다. 후에 MGM의 뮤지컬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댓츠 엔터테인먼트>(1974)에도 실렸다. 지미 라이든과 또 연애 관계로 엮인다. 로비 카드가 예쁘게 뽑혔다.
주디와 데이트(Date with Judy), 1948 - 캐럴 프링글 역
이 작품을 통해 청소년 역으로 확실히 넘어갔다. 로버트 스택은 테일러가 영화상에서 처음으로 어른스런 입맞춤을 하게 된 상대 배우였다. 이 작품부터 화장다운 화장을 하게 되었다. 개봉년도 전체 흥행 9위를 차지했다.
줄리아 미스비헤이브(Julia Misbehaves), 1948 - 수전 패킷 역
부잣집 딸로 나왔다. 어려서 헤어져 오래 보지 못했던 어머니 줄리아(그리어 가슨 분)를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해 신분 차이로 헤어졌던 부모님이 재결합하는 계기를 만든다.[30]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1949 - 에이미 마치 역
테일러를 새침한 미녀 역으로 고정 시키려는 MGM의 의도가 있었다. 피터 로퍼드가 다시 한 번 상대역이 되었다. 3월 10일 개봉.
공모자(Conspirator), 1949 - 멀린다 그레이튼 역
누아르. MGM에서 가능성 있는 여배우(들)에 대한 전례 없는 규모의 고투자 고수익 방침이 세워진 뒤, 테일러를 그 대상으로 결정하고 찍은 첫 번째 작품이다. MGM은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열어주고 프랑스 파리로 호화여행을 보내주는[31] 등 매우 공을 들였다. 첫 성인 배역이며 영국에서 촬영했다. 로버트 테일러가 상대역이었다.
신부의 아버지(Father of the Bride), 1950 - 캐서린 "케이" 뱅크스 역
개봉 직전에 있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니키 힐튼과의 결혼식 비용을 MGM에서 다 댔다. '신부'라는 이미지로 연계된 이 영화의 홍보에 써먹기 위해서였다. MGM의 고투자는 보답 받았다. 1950년에 가장 흥행한 영화 중 하나다. 스펜서 트레이시가 아버지로 나온다. 5월 18일 개봉.
숙취(The Big Hangover), 1950 - 메리 벨니 역
밴 존슨, 안필립 출연. 5월 26일 개봉.
아버지의 작은 배당금(Father's Little Dividend), 1951 - 케이 던스턴 역
<신부의 아버지>의 대성공에 고무돼 서둘러 제작한 후속작이다. 흥행면에서 또 다시 대성공을 거뒀다. 이때까지의 테일러는 이 영화의 감독인 빈신트 머넬리가 아버지라 당시 자주 촬영장에 놀러왔던 라이자 머넬리의 표현처럼, "아직 애"였다.
아이반호(Ivanhoe), 1952 - 레베카 역
로버트 테일러와의 재협업. 이 작품을 통해 두 번째 남편 마이클 와일딩을 만났다. 와일딩은 다른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촬영장이 서로 근처에 있던 것이 인연이 됐다.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아가씨(The Girl Who Had Everything), 1953 - 진 라터머 역
페르난도 라마스, 윌리엄 파월, 기그 영 출연.
랩소디(Rhapsody), 1954 - 루이즈 듀랜트 역
찰스 비더 연출. 비토리오 가스만, 존 에릭슨, 루이 캘헌 출연. 3월 11일 개봉.
1900년대 초 취리히 배경. 1908년에 에설 리처드슨[33]이 발표한 소설 "Maurice Guest"가 원작이다.
거상의 길(Elephant Walk), 1954 - 루스 와일리 역
파라마운트 픽처스 제작. 신경쇠약을 이유로 하차한 비비언 리의 대타 투입이 필요해지자 MGM이 테일러를 또 임대해주었다. 테일러는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피터 핀치, 데이너 앤드루스 출연. 4월 21일 개봉.
호걸 브롬멜(Beau Brummell), 1954 - 레이디 패트리샤 벨럼 역
보 브러믈 전기영화. 10월 1일 개봉.
내가 마지막 본 파리(The Last Time I Saw Paris), 1954 - 헬렌 엘즈워스 역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이 원작인 로맨스. <카사블랑카>의 엡스틴 쌍둥이 형제가 대본을 썼다. 2002년 AFI 100대 애정영화 후보에 올랐었다. 밴 존슨이 상대역이었고, 로저 무어가 조연으로 나온다. 프랑스어 대사를 직접 소화했다. 11월 18일 개봉.
자이언트(Giant), 1956 - 레슬리 린튼 베너딕트 역
MGM이 이번엔 워너 브라더스에 임대해주었다. 제임스 딘은 본인 분량을 다 찍자마자 요절했는데, 테일러는 딘과 같이 나오는 장면의 단독 촬영이 남아있어서 매우 고통스럽게 작업했다. 노년 모습까지 신빙성이 있게 인물을 구축했음에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지 못해 스넙으로 여겨진다. 워너 브라더스 역사상 최고의 매표 기록을 세웠다.
애정이 꽃피는 나무(Raintree County), 1957 - 수재나 드레이크 역
몽고메리 클리프트, 에바 마리 세인트, 리 마빈이 출연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첫 후보 지명되었다. 작품 자체는 고평가 받지 못했다. 촬영분 일부는 <서부 개척사>(1962)의 치커모거 전투 낮 장면에 쓰였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 1958 - 매기 "더 캣" 펄릿 역
촬영 시작 후 고작 2주가 지났을 때 세 번째 남편 마이크 타드가 사망했다. 남편 역의 폴 뉴먼은 테일러가 "연기 도구들을 정확히 사용할줄 아는 배우"라고 평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두 번째로 올랐다.
지난 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 1959 - 캐서린 할리 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세 번째 후보 지명되었다. 테일러는 자신이 이 작품으로 수상했어야 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많은 평론가들이 동의한다. 친척(캐서린 헵번 분)에 의해 강제로 뇌엽절리술을 받을 위기에 처한 여성 역이다. 테일러가 스타 파워로 집어넣은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여주인공의 정신상태를 감정하는 의사로 나온다. 감독 조저프 L. 맹키위츠와 제작자 샘 스피글이 클리프트에게 무례하게 대해 헵번과 테일러가 함께 엄청나게 싸워대서 영화가 미완으로 남을 거란 우려까지 있었지만 강렬한 결과물이 나왔다. 헵번의 대표작으로도 꼽힌다. 고어 비달이 대본을 썼다.
버터필드 8(BUtterfield 8), 1960 - 글로리아 역
MGM 산하 마지막 작품이다. 서류상으론 계약이 끝나있었는데 MGM에서 우겨서 성사 시켰다. 대신 당시 남편 에디 피셔를 작은 역할로 동반 출연시켰다. 여러 남성들과 잠자리를 갖고 "선물"로 돈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며 스스로를 혐오하는 콜걸을 연기했다. 테일러는 대본부터 맘에 안 들었다며 이 영화가 "쓰레기"라고 일갈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네 번 후보 지명 끝에 첫 수상했는데, 테일러는 이를 막 촬영을 시작했던 <클레오파트라> 촬영장에서 폐렴으로 쓰러져 심정지로 여러 번 사망선고까지 받았던 것에 대한 동정표라고 봤다. "목숨값으로 받은 상"이라는 말까지 했었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의 셜리 맥클레인이 받는 게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더 가디언 평론가 피터 브래드쇼는 역대 최고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 중 하나로 이 작품 속 테일러를 꼽았다. 친구 샤론 스톤은 AFI와의 인터뷰에서 "탁월한 신체언어 활용만으로 서사를 만들어낸" 점을 높이 샀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1963 - 클레오파트라 역
20세기 폭스 제작. 조저프 L. 맹키위츠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이다. 촬영 도중 기관절개술을 받아 흉터가 크게 남았다. 실제 클레오파트라보다 더 클레오파트라답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해 스넙으로 간주된다. 60년대엔 눈에 유독 힘을 주는 화장법이 유행했는데 그 시작을 바로 이 영화 속 테일러의 눈화장으로 본다.
주로 리처드 버튼과 협업하며 일과 사랑을 양립하던 시기다. 둘은 언론에서 "리즈&딕(Liz&Dick)"으로 불리며 함께 하는 모든 것이 늘 큰 화제를 모았다. 흥행력이 최고조에 올라 내내 최상위권을 유지했고 예술적으로 큰 성과도 있었지만 후반엔 소위 "하이 캠프"스러운 진부한 영화들만 생산해내 비판 받았다. 보통 영화사에 뜻깊은 기여를 한 연기는 60년대 후반이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본다.
예기치 못한 일(The V.I.P.s), 1963 - 프랜시스 앤드러스 역
<클레오파트라> 촬영 종료 후 헤어졌던 버튼과 테일러는 1963년 초 이 영화의 주연으로 함께 발탁되며 재회했다. 숙소가 런던 도체스터 호텔[34]에 잡혔는데 각자 다른 객실에 머물렀음에도 유언비어가 크게 번져 버튼의 아내가 12월에 이혼을 신청하면서 재결합했다. 버튼과 테일러가 각각 백만장자 남편과 그를 떠나려는 유명 여배우로 출연해 둘의 염문을 연상케 하며 박스오피스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고백(The Sandpiper), 1965 - 로라 레이놀즈 역
빈센트 미넬리 연출. 작품평은 안 좋았지만 크게 흥행한 덕에 주제곡 "The Shadow of Your Smile"이 인기를 끌어 AFI 선정 100대 영화음악에 꼽혔다. 커크 더글러스에 따르면 매카시즘의 선봉에 섰던 칼럼니스트 헤더 하퍼가 초연 때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던 미국 공산당원 작가 돌턴 트럼보를 왜 크레딧에 넣었냐고 따져묻자 테일러가 "좀 닥치는 게 어때요?"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찰스 브론슨이 동료 예술가 중 하나로 나온다.
아내(에바 마리 세인트 분)가 있는 교사(버튼 분)가 문제학생을 아들로 둔 화가 로러를 학부모 상담으로 만나 관계를 맺는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1966 - 마사 역
마이크 니콜스 연출. 테일러가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작품이다. 캐릭터 형성을 위해 일부러 10kg 가량 살을 찌우고 목소리를 낮추고 자세를 바꾸며 자신의 존재를 전격적으로 다시 돌아보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라고. 이 영화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수상이 거의 100% 확정이었음에도 유럽에 머무르던 테일러는 참석을 거부했다. 대리수상자는 다음해 <졸업>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는 앤 밴크로프트. 테일러는 이후 아카데미를 향한 감사 표시도 건너뛰었다. 버튼을 늘 후보에만 올리고 상은 주지 않던 경향성에 대한 간접 항의로 해석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 1967 - 캐서리나 역
<로미오와 줄리엣>(1968)의 프랑코 제피렐리가 감독했다. 1967년 개봉한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수익을 거둬들였다.
황금 눈에 비친 모습(Reflections in a Golden Eye), 1967 - 리어노라 펜더턴 역
영화 내용을 직설적으로 반영한 "금지된 정사의 숲"으로도 불린다. 존 휴스턴 연출. 카슨 매컬러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테일러는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발탁을 출연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클리프트가 촬영 직전 사망해 말런 브랜도가 대타가 되었다. 영화평은 그리 좋지 않지만 테일러의 연기가 빼어나 대표작으로 자주 꼽힌다.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개봉했다. 테일러가 촬영 중에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뉴욕비평가협회 상을 탔을 때 브랜도가 왜 진작 테일러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냐고 기자들을 호통 친 일이 유명하다.
위험한 여로(The Comedians), 1967 - 마사 피네더 역
붐(Boom!), 1968 - 플로라 "시시" 고포스 역
테너시 윌리엄스 원작, 조지프 로시 연출. 나름 호화 제작진임에도 불구하고 흥행과 비평 모두 실패했다. 존 워터스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의 하나다. 실제로 워터스의 작품들과 결이 비슷하다. 다만 테일러가 선보인 스타일은 돌체 앤 가바나 등 패션계에서 영감의 대상이 되거나 행사에서 후배들이 재해석해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테일러는 한동안 비주류 영화에 깊게 빠져 74년까지 특이한 작품들을 주로 찍었다.
비밀(Secret Ceremony), 1968 - 리어노라 역
영국에서 제작했다. <붐>처럼 조지프 로시 연출인데, <붐>과 달리 평은 나쁘지 않았다. 미아 패로, 로버트 미첨이 나온다. 스릴러 장르팬들 사이에서 숨겨진 명작으로 불린다.
Here's Lucy, 1970 - 본인 역
루실 볼의 인기 TV쇼 3기의 포문을 열었다. 출연 회차 제목은 "Lucy Meets the Burtons(루시, 버튼 부부를 만나다)." 팬들을 따돌리려고 배관공으로 변장했던 버튼을 루시가 진짜 배관공으로 착각해 집에 들인다. 후에 루시는 버튼이 버리고 간 작업복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발견해 껴본다. 이는 버튼 부부가 기자간담회에서 선보이기로 한 그 유명한 '테일러 반지'였고, 반지가 빠지지 않자 루시는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팔이 테일러의 팔인 척 한다. 쇼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회차다.
해머스미스 이즈 아웃(Hammersmith Is Out), 1972 - 지미 진 잭슨 역
버튼과의 마지막 협업작이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인 은곰상을 받았다. 작품은 은곰상을 하나 탔고, 금곰상 후보이기도 했다. 파우스트 전설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피터 유스티노프 연출.
TV 출연이 잦아졌고, 연기력이 작품별로 들쑥날쑥하는 경향을 보였다. 70년대까진 흥행력 면에서 여전한 위세를 지녀 마이클 케인과 <화려한 사랑(Zee and Co)>(1972)을 찍을 때 케인의 10배를 받았다.
수요일(Ash Wednesday), 1973 - 바버라 소여 역
큰 주름이 진 중년여성이 딸보다 어린 여성에게 빠진 남편(헨리 폰다 분)을 붙잡아두기 위해 주름제거수술을 해서 테일러의 얼굴이 된다.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 평에서 "미국의 국보인 테일러의 얼굴을 보존할 목적이라면 무슨 짓을 하든 응원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적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왕관은 테일러의 소유"라며,[35] 이런 테일러를 떠나려는 남편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전혀 믿겨지지 않는다는 게 영화의 근본 문제라고 지적했다.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더 드라이버스 시트(The Driver's Seat), 1974 - 리자 역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익스플로이테이션 심리극. 자신을 살해해줄 남자를 찾아헤매는 정신이 불안정한 여성을 연기했다. 과거엔 불친절한 서사 때문에 최악의 필모로 꼽혔으나 오늘날엔 컬트팬층이 형성됐다. 버튼과의 첫 번째 이혼을 신청한 다음 날 촬영이 시작됐다. 앤디 워홀이 잠깐 나온다. 여기에서 보여준 뛰어난 화장 손기술이 2016년 미국 넷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