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goes to movies

2025.07.03 16:24

도리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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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is Day smiling portrait from 'The Thrill of it All' 1963. (Photo by Screen Archives/Getty Images)

 

본명
도리스 메리 앤 캐펄호프
Doris Mary Ann Kappelhoff
출생
1922년 4월 3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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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흥행력이나 현재 미국 내 유명세에 비해 한국에선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언급이 잘 안 되는 연예인 중 하나이다.

대표적인 독일계 미국인으로 소개되는데, 엄밀히는 네덜란드계와 독일계의 혼혈이다. 조부만이 독일의 베스트팔런 바런도르프에서 거주했고 증조부 이상의 조상은 대대로 네덜란드의 흐로닝언에서 거주했다.

1922년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2017년에 출생증명서를 찾기 전까진 자신의 생년월일을 1924년 4월 3일로 기억하고 있었다. 1935년 데이는 아버지가 집에서 다른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는 걸 목격했다. 이는 데이의 인생 내내 트라우마가 된다. 부모님은 얼마 안 가 이혼하였다. 어머니 앨머 캐펄호프는 홀로 데이와 형제자매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우며 데이가 무용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데이는 파트너인 제리 도어티와 함께 공연을 했으며, 여러 대회에서 우승했다.

 

제리 도허티와 도리스 데이

DORIS17

 

1939년 빅 밴드의 가수로 첫발을 떼었다. 이윽고 레스 브라운의 밴드와 함께한 1945년 〈Sentimental Journey〉와 〈My Dreams Are Getting Better All the Time〉을 통해 차트 1위 레코드를 만들며 큰 성공을 이루었다. 이후 솔로 커리어를 추구하여 브라운 밴드를 탈퇴하고 47년에서 67년까지 650곡을 넘게 녹음하였다.

50-60년대 영화 배우로서 대인기를 누렸으며 그 시작은 할리우드 황금기인 48년작 《로맨스 온 더 하이 시즈》부터로 그 이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영화에 등장하였다. 53년작 《캘러미티 제인》, 알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56년작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59년작의 《필로우 토크》에서 주역을 연기하였으며 《무브 오버, 달링》과 《스릴 오브 잇 올》에서는 제임스 가너와 공연하였다. 68년 영화 출연을 그만두고 동년에서 73년까지 자신의 시트콤 《도리스 데이 쇼》에 출연하였다.

1989년 영화에 대한 평생공로상인 골든 글로브 세실 B. 데밀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 대통령자유훈장을 수훈하였다. 2008년 그래미 평생공로상과 가수협회 주관 전설상을 수상하였다. 2011년 로스앤젤레스 영화평론가협회에서 경력공로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