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매리언 로버트 모리슨
Marion Robert Morrison[1]
출생
1907년 5월 26일
아이오와 주 윈터세트
미국의 배우.
193cm의 큰 키와 장대한 체구, 서부극과 전쟁물에 다수 출연하며 얻은 마초적인 이미지로 가장 미국적인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배우 본인이 생전에 많은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마초성 강한 터프가이 이미지를 추구하였고, 존 웨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서부극 역시 당시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전통적인 영화 장르였다. 그래서인지 클래식 할리우드 남배우들 중에서는 제임스 스튜어트, 험프리 보가트와 함께 유명하며, 연기력 또한 우수했던지라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이다.[4]
건장한 체구에서 알 수 있듯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다. 본래 20세기 폭스 영화사의 소품담당 스태프로 일하다가 B급 영화 전문 배우로 활약, 이후 존 포드 감독을 만나고 포드 감독은 그를 단역배우로 기용하다가 역마차를 기점으로 그에게 계속 주연을 맡겼고 이후로 그는 승승장구한다.
대부분의 영화 내용이 지금 보면 뻔한 스토리의 서부극인데 모든 작품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이를테면 그가 출연한 대표작 중 하나인 존 포드 감독의 수색자 같은 영화는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인디언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것처럼 보여 당대에는 인종차별적인 영화라는 오해가 있었으며 크게 인정 받지 못했다. 그러나 태그 갤러거 같은 평론가의 끊임 없는 노력으로 오해가 점차 풀리고 현대에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서부영화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월간 플래툰지의 필진 니미셀은 웨인을 다른 장르의 영화도 서부극으로 만드는 사나이라고 할 정도다. 서부극이 아닌 전쟁영화 혹은 서커스단의 단장으로 나온 영화들도 서부극의 포스를 풍긴다. 심지어는 칭기즈 칸으로 나온 영화까지 그렇다. 즉, 좋게 말하면 성격파 배우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타입캐스트(Typecast)다.
게리 쿠퍼에 라이벌 의식이 있던 것으로 보이며 그가 출연한 '하이 눈'을 평가절하했다고 한다. 이후 자신과 같은 성향을 가진 하워드 혹스 감독과 함께 '리오 브라보'를 만든다. 참고로 혹스 감독도 하이눈 까. 후세에선 하이 눈, 리오 브라보 모두 걸작으로 평가 받고있다.[5] 2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쿠퍼의 최고 걸작으로 하이눈을 언급하면서 자기에게 캐스팅 제의가 오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상당히 많은 전시 선전영화에 출연했다. 그 중에서도 작품성이 존재하는 것은 "싸우는 해군공병대(The Fighting Seabees)"와 "플라잉 타이거즈(Flying Tigers)" 정도. 웨인 사후 이 작품에 "유황도의 모래(Sands of Iwo Jima)"를 추가해서 3부작으로 컬러 작업을 해서 비디오 및 DVD로 출시되었다.
베트남 전쟁을 매우 지지하였기에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그린베레(영화)'라는 영화를 감독하고 당연히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만들던 영화이자 실제 그린베레 대원의 수기를 바탕으로 만들었으니 베트콩은 무조건 악. 미군이 이기며 전쟁 홍보영화라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정치성향을 제외하면 의외로 재미 있어서 유럽에서는 앞부분 기자들과 이야기하는 정치성이 농후한 장면을 삭제한 채 개봉했다. 로빈 무어 원작의 '그린베레'라는 논픽션을 느슨하게 영화화 했으며, 배경이 되는 연대는 1965년으로 미군의 본격적 개입 시기인 1964년 통킹만 사건 직후의 시기이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 삽입곡인 '그린베레의 발라드'는 당시에 꽤나 유명곡이 됐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정작 그린 베레 대원들은 그다지 안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인기있던 곡 중 매우 드물게 군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노래였지만 문제는 노래 가사가 전사하는 그린베레 대원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에게 '기장을 아들 가슴에 달아주고 미국 최고의 그린베레 대원으로 만들어 달라'란 유언을 전해달라는 내용이다.[6] 당연히 좋아할 리가 없다. 당시의 실제 그린 베레 대원들의 수기를 보면 가끔 이 영화와 존 웨인이 언급이 되는데 영화는 그저 그랬지만 존 웨인은 멋있다는 반응이 많다고 한다.
당연히 존 웨인은 베트남까지 가서 장병 위문 공연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일설에는 이 자리에서 미군 장병들에게 힘을 내라는 연설을 하는데, 어느 젊은 사병이 손들더란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참 멍청하게도 나는 당신 영화 "유황도의 모래"를 보고 자원입대했고, 여기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찍은 영화에서 전쟁은 멋지고 위대했지만 진짜 전쟁터는 지옥이던데요? 제발 전쟁을 찬양하는 영화나 만들면서 위대한 미국 운운하기 전에 당신부터 그딴 (미국을 위해서 용감히 싸우라는) 소리 집어쳐라!" 그의 일갈에 분위기는 팍 썰렁해졌고... 존 웨인은 아무런 반론도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서둘러 자리를 내려왔다는 일화도 있다.[7]
"유황도의 모래"는 49년작 흑백영화였다. 저걸 보고 자원입대한다는 건 굉장히 영화 마니아였다는 것이다. 아니면 옛날 영화들을 싸게 틀어주는 허름한 극장에서 봤을 수도 있다. 이 "유황도의 모래"는 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미국 해병대를 다루는 내용으로 후반부 전투신에 실제 참전 병사들이 단역으로 출연하는 영화다. 다만 해당 발언을 존 웨인에게 한 이 사병도 병사들이 제일 신나는 때가 위문공연할 때인데 그때 분위기를 깼고, 위문공연 온 배우에게 면박을 줬다는 이유로 나중에 정신적 압박과 질책을 받았다[8]곤 하지만 이 일화 자체가 전술됐듯 도시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한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마지막 총잡이》(원제: The Shootist, 1976)[9]였다. 이 영화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총잡이로 나오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진짜 암으로 죽었다. 그래서인지 죽기 얼마전에 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지인들에게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 고른 영화가 내 미래를 상징했을 줄 몰랐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마지막 총잡이는 돈 시겔 감독의 영화로, 한국에는 '최후의 총잡이'란 제목으로 수입되었다. 초반부에는 웨인이 찍었던 서부영화들이 조금씩 나온다. 주인공 J.B 북스(존 웨인)는 암으로 죽어가는 건 사실인데 죽을 때 모든 원한관계를 정리하려고 총싸움을 하다가 기습으로(더블 배럴 샷건) 맞아죽는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의사로 출연했다.
사실 존 웨인 영화의 정리판은 앞에서 언급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 보면 된다. 시대와 함께 쓸쓸히 퇴장하면서 영웅으로 남기를 거부하는 인물을 연기해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줬다.